기록속에만 있던 우리 민족의 차

    백산차   백산차 유래 백산차 마시기   백산차 참고 자료

 

 白山茶歌, 謝朴景路」-이상적李尙迪(1803~1865)

我曾九泊燕河槎   내 중국으로 아홉 번 사신을 갔기에

嘗盡天下有名茶   천하에 이름난 차는 모두 맛을 보았지

十二街頭茶博士   열두 거리에 차 박사들 넘쳐나니

賣茶多於賣漿家   음료 파는 가게보다 차 가게가 더 많다네

歸臥敝盧談龍肉   집에 돌아와 누워 용육(龍肉)을 말하며

手把茶經空咨嗟   손에 『다경』(茶經)을 잡고 입맛만 다실 뿐,

湖僧竹露出新製   호남 스님이 새로 만든 죽로차(竹露茶)가 나왔다고

時人往往如嗜痂   지금 사람들이 때때로 별미로 여기지.

應所貴吾鄕物   우리나라 차들을 귀하게 여겨야 옳겠지만

終始香味澁齒牙   끝내 맛과 향이 껄끄럽네.

不咸一綱感君惠   불함산 차를 한 망태기를 그대가 보내 줌에 감사하니

天寒肺病當三椏   찬 날씨 폐병에는 산삼만큼 버금가네.

誰知此土乃有此   우리 땅에도 이런 차가 있는 줄을 뉘라 알리

譬如人才出荒遐   비기자면 인재가 벽촌에서 난 것과 같네.

但恨誰得中泠水   다만 중령(中泠)의 샘물을 얻기야 어렵지만

無勞遠購武夷芽   굳이 멀리 무이차를 사올 필요 전혀 없네

君不見                그대 보지 못했나

江南御茶不入貢   강남의 어차(御茶)를 공물로 못 바치자

旗槍埋沒隨蟲沙   잎과 가지가 매몰되어 쓸모없이 되었음을

又不見                또 보지 못했나

泊汋年年通百貨   박작(泊汋)에서 해마다 온갖 재화가 무역되는데

今秋無箇水仙花   올 가을에 수선화가 하나도 없던 것을

茶話故人散如雨   다화도(茶話圖)그린 벗은 비처럼 흩어지고

烽烟已入天津涯   봉화 연기는 어느새 천진(天津) 물가 이르렀네

何幸吾生享多福   무슨 행운으로 나의 생은 많은 복을 누리는지

煎茶覓句送年華   차 달이고 시 지으며 세월을 보내노라

                                                         출전:『은송당집』 속집 권1

   백산차에 관한 기록

내용 참고 자료
우리나라 차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야 한다. 그 하나는 재래차인白山茶와 외지로부터 전래된 綠茶다. 그 중 백산차는 석남과에 속하는 철쭉 종류로써 장백산(백두산)정을 중심으로 자생한다. 단군시대부터 마시던 것으로 靑朝 乾隆에는 이 백산차를 공납하라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도 삼한 정벌론을 주장했던<武內縮禎>에도 백산차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응송
(1892-1991)
<東茶正統考>
한국 차문화의 발달 백산차 P.9

신라 이전의 茶에 관해서는 백산차가 있었다. 백산차가 있었다는 것은 청에 건륭제 때 백산차를 貢茶했다는 기록이 있다. 石南茶라는 이름으로 일본 중국 등에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吉林外記에는 안춘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장백산에서 생산 되었기에 백산차라고 하고, 바위의 깨끗한 곳에 자랐기 때문에 석남차라고도 한다. 높이가 일장(一丈)이나 되며 잎은 버들잎 같고 제사에 쓰였다. *정상구
<韓國茶文化學>
우리나라 茶史 신라이전 차 P.145
조선의 장백산에서 차가 나는데 이름을 백산차라고 한다. 청 건륭 때에 청나라 사람이 차를 따서 바쳐 궁궐에서 어용차로 쓰도록 하였다. (朝鮮之長白山 山茶名曰白山茶 乾隆時淸入採貢 宮庭爲御用之茶)

*이능화(1869-1943)
<조선불교통사> 하권 智異山唐茶

조선의 장백산이란 백두산을 가리키는 말이다. 줄여서'백산'이라도 하는데 여기에서 나는 석남과나 철쭉과의 나뭇잎을 따서 차를 만들어 마신다. 이것을 백산차라고 하는데 향기롭고 맛이 있어 일찍부터 제사에 사용하였던 것 같다. 제강존(諸岡存)씨가 쓴<조선의 茶와 禪>에 '백산차라 칭하여 장백산의 석남과 식물의 잎을 따서 말려서 차의 대용으로 쓰던 기록이 이곳 저곳에 있다.' *석용운
<韓國茶藝> 동양식 대용차 보림사P.24-28
海東繹史에 차가 수입되기 전부터 차의 대용으로 백산차가 있었다'는 기록은 백산차에 믿음성을 주는 자료다. 백산차는 늘 푸른 관목. 진달래科 백산차屬. 꽃은 흰색이고 잎은 보통 나뭇잎과 같은 초록이다. 지금과 같은 차(작설차)가 이 땅에 심어지기 전인, 오랜 옛날부터 백두산록 일대에서 자생해 왔던 토산 식물. 백두산 근처 만주 땅에서 사는 우리 민족들이 어린잎을 따서 말려 차 대용으로 우려 마셔온 토종차. 제사상에도 올랐다. '청조 건륭간에 백산차를 공납....'-건륭기간이라면 1736-1795년으로 조선 영조 정조 시대까지 백산차가 생산되었다는 말이 된다. 또 청에서 발행 된 것이 1918년이니 그 무렵까지는 있었던 것이 분명한 모양이나 일제 수난 이후 백산차에 대한 발굴은 커녕 기초 조사도 어려웠던 시기였던 만큼은 틀림없다. *김대성<설록차> 1999년9/10월호 우리차그 뿌리를 찾아서 P.4-5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46-1 성북트리즘 빌딩 707호   TEL | 02) 359-8114  FAX | 02) 352-5255 |   Copyright ⓒ 차이야기, All rights reserved.